소설속의 삶 그리고 사랑 <6> 이순원의 <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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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봤더라..책꽃이에 꽃혀있는 현대문학상 수상집,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훑어봐도 이순원의 <수색 그 물빛무늬>를 찾을수 없다.
하긴 우리집에 놀러오시는 지인들에게 방문기념으로 가지고 싶은 책을
가져가도 좋다고 호기를 부린것이 몇 년인가.
내가 아끼던 책을 뽑아드실때는 속이 좀 쓰리긴 했어도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처럼, 내가 깊은 감동을 받았듯이 그 책을 가져가는 분에게도 그책이
나와같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켜 주기를 바랄뿐..그걸로 족했다.
아마도 <수색 그 물빛무늬>는 어느 손님의 손에 실려간듯하다.
<수색 그 물빛무늬>는 결국 찾지를 못하고 1996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는 <말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찾아들었다.
하긴..<말을 찾아서>도 이순원의 작품성향을 나타내는데는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는 하다.
강원도는 이순원이 있어 행복하다.
가족사를 다룬 <수색 그 물빛무늬>는 물론이고 <그대 정동진에 가면>,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은비령>등 수많은 작품속에서 강원도 지방 특유의
짙은 향토색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려내간다.
그는 관광객으로 오는 타지사람들에게 강원도가 단지 도시사람들의 체내와
영혼에 축적된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관광지로서의 강원도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뒤에 가려진 신산한 강원도 민중의 삶과 정서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곤 한다.
그만큼 그는 강원도를 사랑한다.
소설가에게 있어 소설이란 완전한 자기복제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상상의 창작이거나
아니면 그 두 극단의 중간에 있거나 할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삶과 내면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을것이다.
이순원은 자신의 소설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껴서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소설속에 이입하여
그려나간다.
상상력에 의한 창작에 비하면 좀더 쉽지않을까 생각들지 모르겠지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파헤지는 일은 자신에게 너무나 잔인하다
할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며 누구나 할수있을 만큼 쉬운일이 아니다.
꼬장꼬장하고 내공이 센 이순원만이 해낼수있는게 또 그의 작품이다.
이순원의 <말을 찾아서는>는 강원도의 원조 대표작가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많이 닮아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서는 <메밀꽃 필무렵>의 현대판 이라고 할만큼
그 구성이라던지 배경이라던지 인물이라던지 <메밀꽃 필무렵>의 많은
부분 샘플링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허생원-동이-나귀가 아부재-나-노새로 대비가 되고
물론 지리적 배경은 둘다 강원도의 봉평과 대화가 등장하고
둘다 모두 애뜻한 가족사가 담겨있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진짜 아버지와 <나>에겐 당숙이면서 양아버지인
‘아부재’ 다.
아부재에겐 결혼해서 15년이 흘러 40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
다른병으로 진찰을 받던중 당숙모가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이라는것을
알게되고 여러차례 문중회의 끝에 <나>를 당숙인 아부재에게 양자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의 의견이나 의도는 전혀 반영이 안된 어른들만의 결정이었다.
“아마 어른들이 나를 일찍 작은집 양자로 정했던건 이제 앞으로도 당숙모가
아이를 낳을수 없게 된것을 알아서라기보다는 그때 당숙과 당숙모의
실의를 나의 양자로 메워주려는 배려 때문이 아니었다 싶다.“
.
.
“나는 양재안가.”
“누가 지금 가서 살라나? 나중에 작은집 제사만 맡으면 되지.”
“그래도 안가.”
<나>는 노새수레를 끄는 당숙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그의 양자로
간다는것은 참을수없는 모욕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도 싫었지만 남들이 까닭없이
우습게 아는 노새집의 ‘노새애비’ 아들이 되는게 싫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마차를 끌고 가는 당숙을 만났을 때
노새가 왕자표 통고무신 같은 자지를 배 밖으로 덜렁대고 있으면 내가 다른 아이들
앞에 옷을 앞에 옷을 벗고 그렇게 서있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래서 저만치서 노새가 보이면 늘 내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하곤 한다.“
.
.
하지만 당숙은 언제나 <나>에게 친아들 이상으로 귀하게 대해주었고 뿌듯해
하셨지만 나는 그것조차 귀찮고 싫다.
어느날 친구들과 학교에서 마치고 오는 도중 다른마부들과 섞여서 쉬고있는
‘아부재’와 조우하게 되고 그는 <나>를 살갑게 대하며 아는체를 하자
나는 친구들에게 창피하기만 하다.
아부재는 그의 친구들에게 내 아들이라며 자랑을 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친구들과 맛있는것을 사먹으라고 건네주시는 100원짜리
지폐를 그의 면전에서 내던지며
“싫어요. 나 아재 양재 안해요!” 하고 면박을 준다.
그이후 상심을 한 아재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며 어느날 집을 나가서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것이었다.
당숙모가 우리집에 찾아와 한탄을 한다.
“집 나가기 전에 술을 짠뜩 먹고 와 이런말을 하잖우. 어디가서
여자를 사서라도 애 하나를 낳아 와야겠다구.
그러면서 또 나한테 그러잖우.
내가 오죽하면 아 못낳는 자네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겠느냐구,
그러면서 대구 울구....“
그런 사연으로 나는 아부재가 있다는 봉평으로 길을 나선다.
“천상 장터 거리의 술집이며 밥집에 들어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
.
“콧날이 우뚝하고 여기 귓불 아래 어금니 자리에 팥알만한 점이
있는 양반 말이제?“
“그 사람이 맞나는 모르겠다만 아들이 없어 그래 댕긴다고 하던데”
“그러면 맞아요”
“참 이상네. 아들이 없다는게 맞다면서 또 아버지라는 얘기는 무슨 얘긴데
시방“
결국 아부제를 찾게되고
“ 아부제...
지가 잘못했어요.
언, 언제완 ?
어제요. 어무이가 아부제 모시고 오라고 해서요.
....밥은 먹은 ?
아부제...가요, 집에...
오냐, 가야제. 니가 왔다해서 다 챙겨 내려왔는기.“
(강원도 사투리라 알아듣기 좀 어려움)
그렇게 해서 봉평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오는 길이
시작된다.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입에서 풍기는 술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옆은 온통 옥수수밭이거나
감자밭, 올갈이 무우와 배추를 뽑은 다음 씨를 뿌린 메밀밭이었다.
꽃향기도 좋고 저녁 바람도 시원했다.
“수호야.
니가 날 데리러완 ?
야, 아부제.
니가 날 데리러 여기까지 완?
야 아부제.
수호야.
야.
니가 날 데리러 이 먼데까지 완?
야, 아부제.
니가.....니가....나를 애비라구 데리러 완?
야, 아부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부제는 그 말을 묻고 또 물었다.
훑어봐도 이순원의 <수색 그 물빛무늬>를 찾을수 없다.
하긴 우리집에 놀러오시는 지인들에게 방문기념으로 가지고 싶은 책을
가져가도 좋다고 호기를 부린것이 몇 년인가.
내가 아끼던 책을 뽑아드실때는 속이 좀 쓰리긴 했어도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처럼, 내가 깊은 감동을 받았듯이 그 책을 가져가는 분에게도 그책이
나와같이 마음에 공명을 일으켜 주기를 바랄뿐..그걸로 족했다.
아마도 <수색 그 물빛무늬>는 어느 손님의 손에 실려간듯하다.
<수색 그 물빛무늬>는 결국 찾지를 못하고 1996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는 <말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찾아들었다.
하긴..<말을 찾아서>도 이순원의 작품성향을 나타내는데는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는 하다.
강원도는 이순원이 있어 행복하다.
가족사를 다룬 <수색 그 물빛무늬>는 물론이고 <그대 정동진에 가면>,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은비령>등 수많은 작품속에서 강원도 지방 특유의
짙은 향토색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그려내간다.
그는 관광객으로 오는 타지사람들에게 강원도가 단지 도시사람들의 체내와
영혼에 축적된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관광지로서의 강원도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뒤에 가려진 신산한 강원도 민중의 삶과 정서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곤 한다.
그만큼 그는 강원도를 사랑한다.
소설가에게 있어 소설이란 완전한 자기복제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상상의 창작이거나
아니면 그 두 극단의 중간에 있거나 할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상상력에 의한 창작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자기 자신의 삶과 내면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을것이다.
이순원은 자신의 소설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껴서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소설속에 이입하여
그려나간다.
상상력에 의한 창작에 비하면 좀더 쉽지않을까 생각들지 모르겠지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파헤지는 일은 자신에게 너무나 잔인하다
할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며 누구나 할수있을 만큼 쉬운일이 아니다.
꼬장꼬장하고 내공이 센 이순원만이 해낼수있는게 또 그의 작품이다.
이순원의 <말을 찾아서는>는 강원도의 원조 대표작가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많이 닮아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서는 <메밀꽃 필무렵>의 현대판 이라고 할만큼
그 구성이라던지 배경이라던지 인물이라던지 <메밀꽃 필무렵>의 많은
부분 샘플링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허생원-동이-나귀가 아부재-나-노새로 대비가 되고
물론 지리적 배경은 둘다 강원도의 봉평과 대화가 등장하고
둘다 모두 애뜻한 가족사가 담겨있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진짜 아버지와 <나>에겐 당숙이면서 양아버지인
‘아부재’ 다.
아부재에겐 결혼해서 15년이 흘러 40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
다른병으로 진찰을 받던중 당숙모가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이라는것을
알게되고 여러차례 문중회의 끝에 <나>를 당숙인 아부재에게 양자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의 의견이나 의도는 전혀 반영이 안된 어른들만의 결정이었다.
“아마 어른들이 나를 일찍 작은집 양자로 정했던건 이제 앞으로도 당숙모가
아이를 낳을수 없게 된것을 알아서라기보다는 그때 당숙과 당숙모의
실의를 나의 양자로 메워주려는 배려 때문이 아니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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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재안가.”
“누가 지금 가서 살라나? 나중에 작은집 제사만 맡으면 되지.”
“그래도 안가.”
<나>는 노새수레를 끄는 당숙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그의 양자로
간다는것은 참을수없는 모욕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도 싫었지만 남들이 까닭없이
우습게 아는 노새집의 ‘노새애비’ 아들이 되는게 싫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마차를 끌고 가는 당숙을 만났을 때
노새가 왕자표 통고무신 같은 자지를 배 밖으로 덜렁대고 있으면 내가 다른 아이들
앞에 옷을 앞에 옷을 벗고 그렇게 서있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래서 저만치서 노새가 보이면 늘 내가 먼저 그 자리를 피하곤 한다.“
.
.
하지만 당숙은 언제나 <나>에게 친아들 이상으로 귀하게 대해주었고 뿌듯해
하셨지만 나는 그것조차 귀찮고 싫다.
어느날 친구들과 학교에서 마치고 오는 도중 다른마부들과 섞여서 쉬고있는
‘아부재’와 조우하게 되고 그는 <나>를 살갑게 대하며 아는체를 하자
나는 친구들에게 창피하기만 하다.
아부재는 그의 친구들에게 내 아들이라며 자랑을 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친구들과 맛있는것을 사먹으라고 건네주시는 100원짜리
지폐를 그의 면전에서 내던지며
“싫어요. 나 아재 양재 안해요!” 하고 면박을 준다.
그이후 상심을 한 아재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며 어느날 집을 나가서는
한달이고 두달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것이었다.
당숙모가 우리집에 찾아와 한탄을 한다.
“집 나가기 전에 술을 짠뜩 먹고 와 이런말을 하잖우. 어디가서
여자를 사서라도 애 하나를 낳아 와야겠다구.
그러면서 또 나한테 그러잖우.
내가 오죽하면 아 못낳는 자네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겠느냐구,
그러면서 대구 울구....“
그런 사연으로 나는 아부재가 있다는 봉평으로 길을 나선다.
“천상 장터 거리의 술집이며 밥집에 들어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
.
“콧날이 우뚝하고 여기 귓불 아래 어금니 자리에 팥알만한 점이
있는 양반 말이제?“
“그 사람이 맞나는 모르겠다만 아들이 없어 그래 댕긴다고 하던데”
“그러면 맞아요”
“참 이상네. 아들이 없다는게 맞다면서 또 아버지라는 얘기는 무슨 얘긴데
시방“
결국 아부제를 찾게되고
“ 아부제...
지가 잘못했어요.
언, 언제완 ?
어제요. 어무이가 아부제 모시고 오라고 해서요.
....밥은 먹은 ?
아부제...가요, 집에...
오냐, 가야제. 니가 왔다해서 다 챙겨 내려왔는기.“
(강원도 사투리라 알아듣기 좀 어려움)
그렇게 해서 봉평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오는 길이
시작된다.
“달이 없어도 별이 좋은 밤이었다.
아부제의 입에서 풍기는 술냄새가 조금도 싫지 않았다.
노새는 연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고, 길옆은 온통 옥수수밭이거나
감자밭, 올갈이 무우와 배추를 뽑은 다음 씨를 뿌린 메밀밭이었다.
꽃향기도 좋고 저녁 바람도 시원했다.
“수호야.
니가 날 데리러완 ?
야, 아부제.
니가 날 데리러 여기까지 완?
야 아부제.
수호야.
야.
니가 날 데리러 이 먼데까지 완?
야, 아부제.
니가.....니가....나를 애비라구 데리러 완?
야, 아부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부제는 그 말을 묻고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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